옛날 이 산이 있는 마을에 해평윤씨 집안의 상(喪)이 있었다. 죽은 윤씨 집안에는 두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산소를 명당에 세워 후손 중에 출중한 인물이 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소망이었다. 그래서 두 형제는 유명한 지관을 찾아 명당을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이 지관이 윤씨의 묘를 쓸 곳을 택해 준 곳이 대암산맥의 기맥 기슭으로 남면 청 2리에 소재한 학수산이다. 두 형제는 지관이 가리키는 곳을 묘소로 택한 후 천관하려 했다. 하지만 묘소로 택한 곳은 아주 단단해서 땅 파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지관이 2척을 파라고 하여 형은 아우에게 2척 정도라도 충분하다고 2척만 파고 천관하자고 했다. 그러나 아우는 4척을 파야 한다고 했고 또 너무 얕게 파면 겨울에 땅이 얼 것을 염려하여 4척을 파자고 우겼다. 그래서 아우는 한자를 더 팠다. 그러자 화강암 지층이 풍화되어 묘토로서는 제일 좋은 석회질과 모래로 혼합된 지질이 나왔다. 형제는 묘토가 좋은 것을 보고 서로 즐거워했다. 그런데 천관에서 난데없이 학이 나와 건너편 파평윤씨 소유산으로 날아갔고 지금도 학이 머리를 돌려 날아갔다 하여 학수산이라 이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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